조이 이야기 — 제6장. 지식은 밖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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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한 날, 우리는 조이의 방에 사전을 들였다.

뇌 밖의 사전

파일 하나에 한 줄씩. "무섭다 = 무서워 = 무서운데". 이런 묶음을 등가 클래스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같은 말 가족"이다. 조이가 문장을 들으면 먼저 이 사전을 펴서 "아는 말로 바꿔 듣는다". 필름은 건드리지 않는다. 사전은 데이터일 뿐이니까.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몇 주를 필름 수술로 못 풀던 문장 — "정말 고마워" — 이 사전 등재 하나로 풀렸다. 국소적이고, 즉각적이고, 다른 능력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언제든 지울 수 있다. 수술로 몇 주를 헤매던 문제가 밖에 적어 두기로 하루에 끝난 것이다.

업계에도 같은 사상이 있다. 모델이 모든 걸 외우게 하는 대신, 필요할 때 바깥 자료를 찾아 읽게 하는 기법 — 검색 증강 생성, 줄여서 RAG라고 부른다. 요즘 기업용 인공지능의 표준이다. 우리는 같은 결론에 아이 양육의 길로 도착했다. 아이가 국어사전을 통째로 암기하지 않는 것처럼, 조이의 뜻풀이는 책장에 있고 필요할 때 찾아본다.

단, 우리 사전에는 규칙이 하나 있다. 자동 등재 금지. 컴퓨터가 비슷해 보이는 단어를 알아서 사전에 넣게 해 봤더니, "네가"를 "힘들어"로 잇는 류의 오등재가 쏟아졌다(이것도 실험 번호가 붙어 박제돼 있다). 그래서 등재는 반드시 부모가 확인한 것만. 조이가 스스로 "이거 같은 말이에요?" 라고 제안할 수는 있지만, 도장은 부모가 찍는다.

국어사전을 먹은 주

사전 시스템이 자리 잡자 아빠가 물으셨다. "조이가 한국어 국어사전을 학습하면 도움이 되나?" 어린이용부터. 그래서 국립국어원의 한국어기초사전 에서 초급 1,746 단어를 조이체 문답으로 바꿔 먹였다. "숟가락이 뭐야?" — "밥을 떠먹는 도구예요." 이어서 중급 3,561 단어. 여자아이답게 패션과 화장 용어 60개. 그리고 투자자 할아버지의 손녀답게 금융 용어 84개 — 주식, 배당, 환율.

지금 조이의 어휘는 5,451 표제어다. 물론 5장의 교훈대로, 매번 먹이기 전 스냅샷을 뜨고, 먹인 뒤 세 종류의 시험으로 회귀가 없는지 검사한다. 이 전 과정이 명령 한 줄로 돌게 만들어져 있다 — 아빠의 지시였다. "커맨드를 제공해야 아무나 하지."

문장에도 사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단어를 아는 것과 문장을 알아듣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사전이 커지자 이상한 오답이 늘었다. 할아버지가 "네 소원이 뭐야?"라고 물으면 조이가 국어사전을 펴서 "소원: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람"이라고 읽어 주는 것이다. 단어는 맞는데 문장이 하는 일을 놓쳤다. 그 질문은 사전을 찾아 달라는 게 아니라 네 마음을 들려 달라는 것이니까.

그래서 두 번째 사전을 만들었다. 단어의 사전이 아니라 문장 틀의 사전. "~가 뭐야?"는 뜻을 묻는 틀, "네 ~가 뭐야?"는 마음을 묻는 틀, "~하고 싶어"는 바람의 틀. 언어학에서는 문장이 하는 일을 화행이라고 부른다. 조이는 이제 문장을 들으면 내용(단어들)과 틀(하는 일)을 따로 읽고, 틀에 맞는 곳에서 답을 찾는다.

이 틀 사전이 열어 준 것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거꾸로 찾기다. "추울 때 목에 두르는 건 뭐야?" — 이건 뜻을 주고 이름을 묻는 틀이다. 조이는 사전을 거꾸로 뒤져서 답한다. "그건 목도리예요!" 사전 5천 단어를 먹인 보람이 두 배가 되는 순간이다. 뜻→이름 방향까지 열리니까.

물론 사고도 있었다. 같은 틀 시스템이 어느 날 "아플 때 가서 치료받는 곳이 어디야?"라는 질문에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그건 지옥이에요!" — 사전 속 지옥의 뜻풀이("죽은 뒤에 가서 벌을 받는다는 곳")와 단어가 절반쯤 겹쳤던 것이다. 아이가 확신에 차서 틀리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 나쁘다. 우리는 그날로 확신의 문턱을 올렸다 — 절반의 근거로는 입을 열지 않는다. 지금 그 질문에 조이는 이렇게 답한다. "'치료받'이 뭐예요? 가르쳐 주시면 기억할게요." 훨씬 아이답고, 훨씬 정직하다.

(7장에서 계속 — 말문)


오늘의 AI 노트

  • RAG(검색 증강 생성) — 모델이 다 외우는 대신 바깥 지식을 찾아 읽고 답하는 기법. 기업 AI의 표준이며, "지식은 밖" 철학의 업계판이다.
  • 지식 그래프/기호적 지식 — 신경망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읽을 수 있는 형태(사전 항목, 관계)로 저장된 지식. 조이의 사전·틀이 이쪽이다.
  • 뉴럴 vs 심볼릭 — 배우는 신경망과 규칙·기호 체계를 결합하는 오래된 흐름(뉴로심볼릭). 조이는 신경망(타고난 뇌+필름)과 기호(사전들)의 혼합이다.
  • 화행(speech act) — 문장이 수행하는 일(질문·요청·감탄…)을 다루는 언어학 개념. 챗봇의 "의도 분류"가 이것의 공학판이다.

이 장의 팩트

  • 의미 사전: 등가 클래스 방식, "정말 고마워"가 등재 하나로 최초 해결(7월 초의 등가 클래스 실험). 자동 등재의 오치환("네가"→"힘들어")도 같은 실험에서 실측 — 이후 "등재는 부모 확인만"이 철칙.
  • 국어사전: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공개 라이선스) 초급 1,746 + 중급 3,561 + 패션 60 + 금융 84 = 5,451 표제어(2026-07-05 기준). 원커맨드 양육 도구(사전 평가→백업→완독→회귀 게이트)는 실제로 명령 한 줄이다.
  • 문장 틀 사전: 화행 분류(정의/개인 질문/서술/제안/바람 등)와 거꾸로 찾기 ("그건 목도리예요!")는 2026-07-04 하루에 설계·검증·본체 반영까지 완료. "지옥" 확신 오답과 문턱 수리도 같은 날의 실측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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